전시 관람/24년

탁영준 개인전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아뜰리에 에르메스 (23.11.24-24.01.28)

천정누수 2024. 2. 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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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영준 개인전아뜰리에에르메스 전시

https://www.hermes.com/kr/ko/content/maison-dosan-park/atelier-hermes/24112023/

 

송은에서 전시를 보고 친구의 안내를 따라 아뜰리에에르메스전시 <목요일엔 네 정경한 발을 사랑하리>를 보러 왔다. 난감했던 건 삐까번쩍한 에르메스매장을 가로질러 전시장에 들어가는 것 이었다. 안그래도 백화점같은 느낌 싫어하는데 여긴 더 문제였다. 매장 가장 안쪽의 얇은 폭의 엘레베이터를 타고 들어가 지하 카페를 지나 어두운 전시장에 도착했다.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2023
사랑스런 일요일이 되길 바라,2021
내 커다란 기대,2022
사랑스런 일요일이 되길 바라,2021
탐,2023

 

(...)

 

전시는 두 점의 필름이 직각으로 배치되어 공간을 압도한 가운데 두 점의 소형 조각이 여백의 공간에 방점을 찍으며 전시장을 상징적인 성소로 변모시킨다. 전시장 입구에서 마주하게 되는 탐 Wishful(2023)은 교회 입구의 성수반을 활용한 것으로 실제 이탈리아의 성구 제작소에서 수제작한 기물이 사용됐다. 성수 대신 작가의 젖꼭지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실리콘 조형물을 배치해 가부장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순교 당한 성녀들의 가슴을 퀴어 신체로 대체한다. 내 커다란 기대 My Big Expectation(2022)는 독일 문화권에서 매년 철마다 각광받으며 경제, 농업, 종교적인 함의를 갖는 채소 하얀 아스파라거스를 1미터 높이의 목재 기둥 두개로 재현한 뒤, 그중 하나에 하얀 아스파라거스의 수확 시기와 연관이 있는 세례자 성 요한의 두상을 새겨 넣었다. 성인을 기념하면서도 짓궂은 농담처럼 세속적인 욕망을 중첩함으로써 역사의 깊이 속에서 인간의 개인적 믿음과 바람이 서서히 공동의 의식, 체계를 꾸려나가는 양상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사이트 서문 中

 

영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한 영상은 십자가를 매고가는 군인을 촬영한 장면과 그 장면을 바탕으로 숲길에서 안무를 만드는 장면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다른 한 영상은 게이 안무가 팀이 서로가 안무를 만들었던 공간(클럽과 교회)을 바꿔서 기존의 안무를 수정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두 대비되는 장소, 혹은 인물이 유려한 선과 흐름으로 합쳐져 보인다. 

 


탁:
종교나 젠더 모두 인간의 소소한 믿음이 점차 정제돼 거시적 체계로 발전한 사례입니다. 전는 이러한 믿음이 종종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지식을 초월해 인간사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봅니다.이렇게 인간의 믿음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제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5년 말이 국제적 '탈진실 정치학'으로 점철된 시기여서 거욱 그렇기도 하지만, 꼭 이때만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전반이 거짓, 허구의 각생과 진실화의 정도를 달리하며 요동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지금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그 믿음의 피력이 가열 차졌고 매 극단을 내달리는 부류들이 전 지구적으로 가시화되며 분열의 고착은 이제 기반구조가 됐습니다.그런데 정작 신체를 두리번거리며 작업하다 보면 그런 구분을 일삼는 주체인 인체만큼 서로 제각각인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에 따라 그 구성 요소들에 울타리를 지어가며 자기 입맛에 맞는 동질감을 조성하고 저 경계 너머를 손가락질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 작품마다 자기모순적 성격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그것만큼 실로 인간적인 게 없지 않을까요?

 

나눠준 리플렛 책자에 있던 안소연 아티스틱 디렉터와 탁영준 작가의 인터뷰 중 에 나온 믿음. 정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