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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뭉치

800년 된 은행나무

by 천정누수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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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6km를 뛰고(적는 이유: 자랑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고서 한숨 자고 작업실을 가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인천대공원 은행나무를 보러 가자고 졸랐다. 밥 먹는 중에 한번, 밥 먹고 한번, 그리고 빨래를 같이 널면서 한번 이렇게 계속 가자고 꼭 가야 할 것처럼 말하는 탓에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정말 노랗게 단풍이 졌을 것이라고 계속 가자고 조르는 아버지. 정말 이상한 일. 보통 때였으면 아버지가 한두 번 하다가 말았을 텐데
 
처음엔 ■ ■ ■ ■ ■   "■ ■  ■ ■ ■  ■ ■ ?"  ■ ■  ■ ■ ■  ■ ■. 이런 생각은 잠깐 생각하다 넘기고 아버지랑 이런저런 단풍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인천대공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단풍이 물든 나무들을 봤는데 모두 바싹 말라 보였다. 그래서 붉게, 노랗게 물든 잎의 색이 단풍이 물든 게 아니라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더운 날씨만큼 좀 오싹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또 나름 고즈넉하고 이쁘고 그러니까 더 이상했다. 
 
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은행나무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갑자기 또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방학숙제 밀린 초등학생처럼 굴어서 진짜 불쾌했다. 은행나무 아래엔 산악회에 가입했을 것 같은 중년들이 아주 많았고 그 외에 근처 아파트에서 나온 것 같은 젊은 부부, 동남아에서 온듯한 외국인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이들이 나한테 계속 사진 찍어 달라고 해서 웃겼다. 이렇게 찍어주다 보니 앞서 말한 짜증이 약간 풀려 아버지랑 같이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은행나무에서 주차장으로 가면서 아버지는 "옛날 사진들 보니까. 더 사진을 많이 찍을 걸 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짜증 낸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버지의 말하는 방식이 은근히 강요하는 말투라서 꽤 짜증 난다.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아버지는 창문 밖의 풍경을 보라고 말해 줬다. 넓은 차도 양 옆으로 노란 은행나무가 근사하게 뻗어 있었다.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 못 볼 뻔한 풍경을 아버지가 보게 해줬다. 약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   ■   ■     ■   ■   ■ 앞에  내려줬고 따라 나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담담하게 울컥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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