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계예대 졸업전시를 보고 소공스페이스로 넘어왔다. 소공스페이스는 시청역 지하상가에 위치한 전시장이다.. 인천에서 보았던 동인천, 석바위 지하상가보다 확실히 유동인구가 많았다. 외국인 관광객, 정장 입은 직장인 모두 인천 지하상가에선 관찰할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전시장은 지하상가의 다른 매장들처럼 있었다. 이 매장들과 가운데 통로는 같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지나쳤고 상가는 통로 연결된 창으로 빛을 뿜었다. 옛날 작업실이 생각났다. 문을 열어둬도 문 앞으로 지나가던 바람이 생각났다. 정말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절묘함.
구나혜 작가의 <Couple> 전시는 그런 풍경과 어울렸다. 전시장 안은 바람이 안 불었다. 바람이 멎어 조용한 덕분에 스티커와 케첩을 캐스팅한 레진덩어리, 표면을 긁어낸 양철 통이 보였다. 소소하게 수상한 오브제들!



왜 이런 긁은 표면이 좋을까. 정말 정말 좋다. 매끄러운 것을 강박적으로 원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옆면의 상태보다 윗면의 얇은 긁힘 자국이 없는 상태가 더 좋다.(빨간색 표면의 밑칠? 같은 흰 부분이 뭉개져 드러난 것도) 열심히 긁는 걸 상상하게 되어서 좋기보다 그렇게 열심히 긁은 게 아무렇지 않음, 흰색으로 뭉개짐으로 향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옹기종기



꼭 하나씩 나와 있다.


이렇게



작업 노트 재밌음! 한번 읽어보세요!
칫솔에 폼클렌징을 짰다. 정신을 놓고 사는 게 디폴트이긴 하지만 딴생각은 종종 이렇게 평소와 다른 일상을 맛보게 한다. 길쭉한 사다리 꼴의 치약과 클렌징 폼의 형태, 혀와 잇몸이 닿아버린 미적지근한 크림이 아무런 상쾌함도 주지 않고 나서야 입 속을 생각했다.
(...)
/케첩이나 마요네즈는 그 자체로는 무엇이 될 수 없기에(케첩만 먹는 사람도 있으려나?) 많은 음식과 한쌍(couple)이 떠오르게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케첩-감자튀김,케첩-핫도그,레진-오므라이스) 아침을 먹으며 케첩을 꺼내기 귀찮았고 그냥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레진이 생각나듯이 말이다.
(...)
결국 소스는 선택가능한 모든 순간들을 앞에 놓아두고 있는 선택에서 오히려 한발 떨어진 사물로 시작했지만 작업과정에서 사물만 생각되기에 실패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사물만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다. 한 곳에 두고 돌아서면 실제 케첩을 생각하며 만든 빨간 사물들과 토마토에 섞인 생각과 이야기는 모두 레진으로 고정되었다. 사물에 가까이 갈수록 생기는 언어들을 지우기 위해 자유로운 덩어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작업을 통해 사물을 그 상태 그대로 멀리서 가까이서 그리고 내가 없는 상태에서 계속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작업노트_구나혜
나도 클렌징 폼을 칫솔에 짜봤다. 그리고 샴푸를 몸에 발라봤다. 평소와 다른 일상, 다른 촉감을 느꼈다.
사물만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물이 나를 관찰한다고 상상해 보고 사물에서 출발한 시선을 느껴본다. 만약 사물의 시선과 감각을 번역할 수 있다면 그 번역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상상해 본다. 그러면서 생각난 것은 0이었다. 0과 같이 사물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을 상상해 본다. 아무것도 없음을 있게 만들기 위해 0이 생긴 것처럼 구나혜 작가의 작업도 어쩌면 번역을 위한 0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레진의 부피는 0처럼 숫자로 빈 숫자로 제자리를 지킨다.
아니야, 어쩌면 사물은 이미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령들이 깃들었기 때문이지. 레진의 정령이 화를 내기 전에 이만 글을 멈춰야겠다.
오늘 365 횟집 수조에 있는 방어와 눈을 맞추고 왔다. 방어 두 마리는 직사각형 수조 안에서 각 변에 꼬리와 머리가 거의 닿을 정도로 있었다. 입술은 부딪혀 부르텄다. 대신 눈이 맑았다. 그 눈에 이끌려 방어의 숨 쉼을 보았다. 아가미를 통해 나가는 수조의 물, 그리고 그것 때문에 흔들리는 피부를 봤다. 방어의 입안은 붉지 않고 창백했다. 흰 구조와 검은 구멍이 보였다. 나는 반짝이는 눈과 입 안 구멍에 홀려 한참 구경하다 작업실로 왔다. 나는 사실 방어 구멍에 흘러들어 갔다 나온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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