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오면 내가 찾아가리라 | 합정지구
김유자, 박정연 2인전 어둠이 오면 내가 찾아가리라 ORB(김유자·박정연)의 두 번째 기획전 《어둠이 오면 내가 찾아가리라》는 ‘종말’이라는 개념과 오늘날의 관계를 다시 살피며 동시대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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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자, 박정연 2인 전 《어둠이 오면 내가 찾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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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ORB.͙·(김유자, 박정연)
전경 사진: 홍영주
그래픽 디자인: 원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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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24. 12. 4 (수) — 12. 22 (일)
시간: 화-일, 1-7시(매주 월 휴무)
장소: 합정지구(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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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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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예술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별관에서 일렁이는 따뜻한 전시를 보고 난 후, 합정지구로 왔다. 이때는 몰랐으나 합정지구 마지막 전시였다. 합정지구는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아쉬워요.
지하 1층 전시는 음험하지만 따뜻했다. 적외선 촬영된 야생동물을 볼 때의 느낌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에는 적외선 촬영으로 인해 동물의 눈이 빛나 보이는 기이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기이한 모습은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경계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런 모습에 익숙해질 즈음, 그들이 경계를 풀거나 여전히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그들의 자연스럽고 귀여운 움직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지하 전시장은 국립공원과 같이 사람 출입이 제한된 구역 같았다.
1층 전시장은 바닥을 붉은 카펫으로 덮어놓았는데, 그 강렬한 색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불빛과 맞물려, 붉은색이 단순히 시각적인 느낌을 넘어 촉각적으로 다가왔다. 적외선 조명처럼 피부를 따뜻하게 쐬는 감각, 붉은빛은 눈이 아닌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름 다워~!
왜 어둡지.
어쩌다 찍힌 사진
ORB(김유자·박정연)의 두 번째 기획전 《어둠이 오면 내가 찾아가리라》는 ‘종말’이라는 개념과 오늘날의 관계를 다시 살피며 동시대 존재들이 느끼는 징후적 감각과 모호한 시간성에 집중하는 전시이다. 두 작가는 가장 내밀한 내면부터 타인, 주변 환경, 세상에까지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미묘한 감각을 이야기하다 오늘날 ‘종말적’이라는 감각이 전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는 ‘종말’의 감각을 미래의 사건이자 도래할 끝으로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게 아닌, 알아챌 수 없는 아주 천천한 걸음으로 이미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동작의 감각으로 해석한다.
시인 T. S. 엘리엇의 시구 ‘세상의 종말은 이렇게 다가온다. 쾅 소리가 아닌 흐느낌으로(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속 종말의 움직임에서 더 나아가 두 작가는 흐느낌조차 아닌 미세하게 퍼지는 진동으로서 종말, 치명적이지만 동시에 연약한 동작으로 우리를 감싸는 종말적 감각을 풀어내고자 한다. 이는 그 미묘한 진동을 감지하는 형상과 존재들의 상처와 삶, 내일과 어제를 향한 오늘의 감각에 주목하고자 하는 열망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종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멸망과 멸절, 필멸자들! 우하하하. 전시의 온도는 내가 좋아하는 음험하고도 쌉쌀하게 미지근한 온도였다. 마치 미세먼지처럼, 몇십 년 동안 서서히 쌓이다가 느껴지는 고통처럼 지루한 종말의 온도. 하지만 이 지루함이 오히려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멸망하는 세계라는 감각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망했어요"같은 절망의 외침도, 현 상황을 조소하는 모습도 지겹다. 이런 피로감 속에서 오히려 미래에 대한 막연한 애정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미래를 좋아한다. 설령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진부하고 시시하게 끝나더라도, 한 번은 더 바라보게 된다.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지금의 여러 징후를 보면 종말을 훨씬 더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절망적인 미래는 지루해서 상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세하게 퍼지는 종말이 진행될 때 어떻게 살아 갈지, 이런 삶에 더 관심이 간다. 그 세계에서 나는 어떻게 집을 짓고, 콩이나 팥을 심으며 살아갈지. 나는 그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옥수수는 지력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심지 않고 싶다.)
만약 그 미래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좋은 땅에서 짓지는 못할 것 같다. 화전민이 생각난다. 이 단어가 떠오른 이유는, 화전민이 살아온 척박한 삶 때문이 아니다. 그것보다 어렸을 적 쓰레기를 불법으로 태운 뒤 남은 그런 잿더미에 대한 기억, 이 기억 때문에 화전민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슈퍼마켓 검은 봉지, 농사 후 남은 검은 비닐, 밭고랑을 덮을 때 쓰던 비닐, 비료 포대, 마른 잡초, 수확 후 남은 뿌리와 줄기 그것들이 한데 뒤엉켜 타버리고 썩어가던 모습. 이것이 비료가 될지 모르겠지만 두엄처럼 쌓여있는 모습. 내가 농사를 짓는다면 불타고 뒤섞인 두엄 위에 농사를 지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두엄에서 새싹이 돋길 바란다. 대나무처럼 솟아나는 게 아닌 이끼처럼 퍼져나가길!
쾅 소리가 아닌 흐느낌으로(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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