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 우드:삶으로부터
이시우드의 이미지는 불길합을담고 있는 의식의 흐름, 최근 밀레니얼 세대에게소환된중세적'인 경향성을 보여준다. 물질과 비물질, 사물과 믿음을 결합하는 우드의작업은예리한 상징물을 빌려 동시대의 명료함을 거두고,과거의 것으로 여겨지는 정신을 풀어놓는다. 이들은 사치스러운장식품에 박제된 것과같은 스핑크스를닮은 여성, 부드러운 살결과 가짜 손톱과 은식기와 장식적인 목걸이를 가진 얼굴 없는 19세기 여인, 가죽트렌치코트와고급 자동차의 내부, 주디스 리버의 미노디에르(minaudières) 가방, 그리고 미국 코미디언 조안리버스의다양한 초상화등이다. 젊은 세대에 속하는 우드는 시대착오적인 표현 양식을 통해 개인화된 암호를 능숙하게 묘사하되, 대상을 사라지게 합으로써 이미지의 균형을 맞춘다. 그의 말을 빌리면"게으르고 뭉개진 르누아르식 점묘법"을 사용해 화면을예상치 못하게자르거나 불합리해 보이는 시점을 선택하고 기이한 중첩 효과를 적용한다. 사실에 입각한 묘사와 거리가 먼 이기법은 모방에매혹되는 순간을해체의 위협으로 흐트러뜨린다. 트롱프뢰유(trompe-l'oelil)의 착시에 버금가는 우드의 그림은 그의 가장 사적인 자아에 은밀히 침투하는 입구가 되며,외부 세계의 혼적이 유령처럼 드러나는 내면의 세계로 우리를 신비롭게이끈다. 자기 고백이 담긴 블로그 :커및투더디시(committothedish)'를 포함한 우드의 실천은 개인적이지만 일기라고만 할 수없는 방식으로 폭로와 은페 사이를 오간다.
상징물은 그의 그림과 글에 빈번하게 등장한다.콤팩트(<나이츠브릿지훌어보기(Knightsbridge once-over)>,2016)와 핸드백(<비싼 미노디에르2(Expensive Minaudière 2)>, 2017)에 드러나는 환영적인 얼굴은 오컬트나신비주의보다 불안을 유발하는 환각을 떠올리게 하며, 정서적 교감과 안정을 대체하는사물의세계를환기한다. 조안 리버스를 다룬연작은 성형 수술과 물질적 소유라는 가면에 가려진비극, 자기 경멸의 원형을탐구한다. 텔레비전 속나이 든 리버스의 얼굴은우드의 어머니와 매우 닮았다. 우드는 자동차 내부를 그린 그림과 어떤 것에도만족하지 못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가진 유사성을 상상한다. 우드가 블로그에 쓴r자동차에 관하여(Oncars)는아뻐지가 맞다뜨린 중년의 위기, 그가 가족으로부터술을 수있는 매혹적인 장소와맺는 관계를 되새긴다. 우드에게상징물은 안전하다. 그는 블로그에서 "모두를 좋아하되 아무도 믿지 말라"'는, <더 힐즈(The Hils)>에 출연한 로렌 콘래드의 말을 인용한다. 그의 상징물은 뉴스 속 재난을 보듯 과거를 완전히 되돌릴 필요없이 한발짝떨어저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다. 유머는 우드의 언어에서 진실을 위한 또다른 변장이다. 그의 작품 체목은 미모하게회극적인감각을 전탈한다.카를로스/이시카와(Caros/Ishikawa)에서 열린 개인전 <웬 유 아이 필(When Youl Feel)>의 전시 제목은 심리치료언어가 상처를 표현하는 어법을 변형해 'You(당신)>를 '(나)로 (마치 둔탁한 총성처럼)바꿔배열한 것이다. 생물학과 과학을 맹신하고 정신은 주술적 사고로 평가절하하는 의사 집안에서 자란 우드의 어린 시절을 보건대, 그의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는 비현실 또는 상상의 세계를 연상시키지만, 이러한 정신의영역은 경험적으로 실재하는 분명한 현실로 다뤄진다. 그가거부하는 건 꿈같은'이라는 표현이다. 우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깬 사람에게 그꿈이현실감 없다고 해보라"반박하며, 또는( 심리적인)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신체이형장애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조언하는 건 실제로 위험환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다.다채로운 표면위에서, 우드의 그림은 외부 세계로부터 탈출구를 여는 것처럼
보이거나 최소한 그러하려는 열망을 드러낸다. 우드의 그림은 간접적이고, 불가사의하며,미스테리하다. 그것은 우드 내면의 어둠이 잠재한 자리다. 한편 이것은 때로감지하기 어려운 사회적 통제의 형태로 암호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즐겨 쓰는 벨벳 소재처럼(실제로 빛을흡수하는)유형의 물질이며, 이미지를찾기 위해 크리스티에서찾아 헤맨 경매품처럼고풍스럽다. 이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현실인가?
2017년 10월,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 의혹이 공개되기 불과 몇 주전에 우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자란 무엇이고,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우드는 자신의 회화가지니는 흐릿한 감각에비해 무겁고 선언적인 용어로의 수식을 거부할테다.하지만 우드의 작업은 여성성의 의미를 일종의 위기라고 설명한 그의말과 맞당아 있다. 성정체성을 고민했던 화가 리 로자노처럼, 우드의 회화는 사회가 부여한 성 역할에서 탈피하려는 시스 여성(cis-female)으로서의 주체성을 반영한다. 두 작가의작품은 의인화된 사물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성과 씨름하는 정서불안을 드러낸다. 그러나 로자노가 공격적인 제스처와 과장된 남근을 통해 여성성의 분리를 시도했다면,우드의 회화적 접근은 모호하며 보이지않는 교활한 무언가를 감지하려 한다. 우드는 아름다움의 어두운 속내를 살피기위해 청소에 사용할만한 도구를 그린다. 칫솔, 술가락, 심지어 스크루드라이버까지 포함하는 이 물건들은, 그의말을 빌리면 "여성다움의 어떤 개념을 달성하기 위한 남성의 도구*다. 이엇나간 이미지는 로자노가 십대소녀를 위해재구성한 도구와 연장에관한 도상을떠올리게한다.그의 그림에서 이 도구들은 밝은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이상화된 매력을 열망하는 동시에 경멸하면서 결국 소녀의 몸과 정신을 타락시킨다. <엠티니스(Mtness)>(2018)와 (자이언티스(Giantes)>(2016)는 촌한 거장들의 초상화가 인물의 얼굴에 부여하는 개성을 제거하고, 각각 고전적인 의자의 높은 등받이나 갈비빼를 닮은 금속 비계의 고리로 팅 빈 몸을 표현한다. 섬세하지만 연약하지 않은 여성으로 표현된 두 인물은 손톱과 치아가 쉬인 머리카락으로 휘감겨 있다.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케라틴-은 우드에게강인합을 상장한다.물론 그가 그리는손톰은 교의에서 불 법한 형형색색의 매니큐어나고대 귀족 여성의 호화로운 연장 손톱처럼 보통 가짜이지만 말이다. 화려함은 여성의 신체,경제적계급,정신건강에대한 불안을 감추는 또다른 보호용 갑옷이기에 고통의경험과 밀접하게 없혀 있다.<더레스트(The Rest)>(2018)에는복부가 열린얼룩말 모양의 지갑이 놓여 있다.이 얼룩말은 고통,쾌락, 애도, 황홀 중 무엇으로 몸부림치는 것일까? 종종 우드는 경매 카탈로그나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장식적일커중품을그림 속에 가적온다.이사실은소유물이 재산 분배와손실의 상징으로 전락하는 이혼과 죽음의 역사를떠올리게 한다. 또한 자신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타인의물건이나 삶을 갈망하는 고통을대변하기도한다. 무엇이, 어떤사람이가치를 지니는가? 버려진 것은 무엇이고, 버려진다는 건 어떤느낌인가? 값비싼 토큰을 축적하는 일은 이전에 소유할 수없던 안정성, 사랑, 지위, 또는 지위를 가진 듯한느낌이라는 보상을 보장한다. 우드의 그림은 사회적 계급처럼 오랜 세월 역압된 유령같은 권력 구조를 연상시키며, 사회와 정신에 숨어든 구식의 관습을 들춘다.우드의표현방식은과거의 기법을 쉽계연상시키기때문에 미술사의용어로 그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구태의연한 재현 기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특징될 동시대 예술가들 사이에서,우드는 특유의 능숙함으로 동시대로부터의 소외를 포착하며, 여전히존재하는과거의유산으로 가특 찬 순간을 표혈한다. 초혈실주의는 함리성과 이성이라는 계몽주의가 불신에 직면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우드의 작업을이해하기위한미술사의 계보로 여겨져 왔다.그러나 우드의작업은 레오노라캐링턴,도로시아태닝 같은예술가틀과 형식 비교 이상의연관성을 설명하기 어럽다.
양드레 브르통을비롯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순수환' 무의식음이상적현실로간주하며개인의 정신과 그를 둘러싼 세계 간의관계를 연구했다.반면 우드는 이들과다른관점에서 내면성에관해 탐색한다. 우드는 그림과 글을 통해 내면 세계가 현실과
동떨어져 홀로 존재했거나 존재할 수 있는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취약하고불안정하며사회의 움직임과역사의 다층성에 좌우되는, 다시수면워로떠오른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사라진 적 없이 늘 존재해온 것으로이루어진 우드의상상은,세상이라는 조건, 물질적경험의삶과 분리될 수 없다. 내부와 외부의 혼합을 넘어, 우드의 현실은 이 두가지 사이의 동등함이 놓여 있다
원문:마가렛 크로스[이시우드:삶으로 부터][큐라.(cura)31호,2019년 여름
이시우드 그림 좋다. 현재의 중세적 경향이라는 말과 그가 쓴 에세이의 글 모두 그림과 붙어 즐겁게 관람했다. 최근 푹 주저앉음, 멈추기, 눕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이 전시를 보게 됐다. 너의 미래를 중세한다? 라는 전시 제목도 생각나기도 하고...(아트선제센터 2019년즈음 전시 였던걸로기억)
있을 법한 밈적인 표현이 좋다. 나는 밈을 그대로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들은 불편해 했다. 밈 자체가 쉽고 단순하고 가벼워 보이면서 매우 폭력적인 형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시우드의 그림은 옛날 구상화와 밈적인 표현 사이에서 좀더 옛날 그림같은 느낌이 들어 편안하다. 그래서 있을법 하지만 실제로 사용 하지 않은 밈 같은 화면이 좋다.
일민미술관 들어갈때 학생할인 되냐고 물어봤다. 학생할인 밑에 (만24이하)라는 글귀를 못보고 말이다. 주의 집중력을 키울 필요를 느꼈다.
일민미술관 카운터 위치가 바뀌어서 그랬던 것 같다.
p.s. 9월 8일날 아티스트토크를 했다. 맨날 이런거 못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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