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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26년

<땅거미들> 박예림, 임재균, 하지민 _PCO(26.04.11-05.08)

 
《땅거미들》
2026.4.11 - 2026.5.8
운영 시간 : 12:00 - 19:00(월요일 휴관)
장소 : 피코 PCO(서울시 중구 서애로 15-6, 3층)
오프닝 리셉션 : 4.11(토) 오후 5시

기획 : 박예림, 박정우
참여 작가 : 박예림, 임재균, 하지민

촬영 : 고정균 @goh_jk
그래픽 디자인 : 에이스튜디오에이(이재환)
@works.of.a.studio.a @goodboileelee
주최 : 피코 PCO @pco.seoul


폐허! 폐! 허! 유치권 행사 중인 공사장 같은 사진을 보고 관람하러 갔다. 전시는 건축물 어디를 철거하면 나올 것 같은 구조, 재료들이 철거를 중단한 채 먼지가 쌓여있는 채로 멈춰있는 풍경 같았다.  

을지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철 결합 조형물?

 
로봇 파워라는 이비에스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방송은 대형 미니카 같은 로봇이 나와 상대가 전투불능 상태가 될 때까지 싸워 승부를 보는 그런 내용이었다. 거기서 나올 것 같은 조형미. 아니면 90년대 스타크래프트 감성이 있다. 뾰족하고 날카롭고 둔탁함. 

저 몸에 붙어있는 인형과 함께 움직이는 게(종속되는 게) 흥미로웠다.

밑에도 봤다. 투바이가 갈빗대 같다.

목공을 하면 나무 가루가 많이 생기는데 그것들이 여러 번 침전되고 굳어 보인다.

천장 마감재, 택스를 고정하기 위해 뚫린 나사구멍에 훨씬 긴 나사를 박아 넣기. 어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전시장에 창을 꽂고 바닥 타일을 떼어내어 울퉁불퉁한 흔적을 본떠 올렸다. 창! 창!  창!

전시장을 찌르고 콕 들어 올리기. 그렇게 가짜 살점 몇 개를 창에 꽂아 놓고 신나기. 아니면 창으로 고정하기. 아 이 작업이 개 좋았던 게 이런 파괴적이면서 동시에 공간과 어울린다는 점이다. 뭔가 공격하는 것 같은 제스처인데 또 협력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실리카겔 APEX 뮤비 좋아하는데 여기서 연필로 칼 싸움하는 느낌의 공격성. 진짜 칼이 아니라 연필 같은 가벼운 도구로 펜싱해서 좋았던 것 같다. 이 작업에서 연필같은 느낌을 가짜 살점, 바닥을 본뜬 조각이 주는 것 같다. 진짜처럼 안 굴어서 좋다. 그러면서 전시장의 상처를 돌아보게 해서 좋다.

 

전시장에 원래 있던 창문을 쭉 빼온. 저 뒤로 자연광이 들어오면서 뭔가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딱 다람쥐가 들어갈 크기의 회랑.

실제 종이가 올라갔어요

이렇게 보니까 우주선 같기도 하고.

이거 럴커다. 가시지옥

 

나 먼지 좋아하는데 전시장에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일상 속에서 폐허를 인식하게 되는 상황은 어떠한 장소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장소성 자체가 붕괴되었음을 느낄 때다. 그러한 현상은 도처에 편재해 있어서 이제 폐허의 형태를 특정하는 일은 장소란 무엇이었는가를 기억해 내는 것만큼 막막한 일이 되었다. 이를테면 대관용 전시장보다 2년 계약한 신축 원룸이 더 화이트큐브 같을 때, 또는 무인화된 영화관 보다 머리맡에 스마트폰이 거치된 이불속의 어둠이 더 블랙박스처럼 느껴질 때. 그 어떤 꿈도 기억도 흔적을 남길 수 없는 공터에서 삶이 장소의 안과 밖을 뒤집고, 나아가 내면과 외면의 경계마저 흐려놓을 때. 폐허는 더 이상 우리의 바깥에 풍경이 아니라 내부를 잠식하고 있는 (비) 장소성의 표면으로 압착된다.

-빛이 굴을 파는 곳 (박정우, 공동 기획)

 
폐허. 서울 전시 중에서 이 폐허를 폐허처럼 다루는 전시를 본 적이 없다. 왜냐면 다들 너무 세련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도 물론 엉망진창 폐허, 내가 말하는 폐허만 의미하는(보여주는) 전시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세련됐다는 단어가 떠나지 않는다. 
 
전시 자체가 좋은 것 과 별개로. 폐허 속에서 파묻혀서 지내는, 인천 풍경과 비교됐다. 다듬지 않은, 그대로인,  콘크리트 벽을 뚫으며 그림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전시장에 닿기 전에 텅 비어버린 지하상가가 생각난다. 잡동사니와 싸우며 전시한 동료작가가 생각난다. 두 번째 개인전 때 당구대 탁자에게 이겨야 했던 그림이 생각난다. 방치되어 개발되지 않는 동인천역사. 00년대 같은 동인천 풍경. 싸워도 모르는 폐허. 대충 마무리되고 남겨져버린 폐허.   
 
남겨진 폐허는 인천만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경기권 전시장도 그럴 것이고 수도권에서 멀면 멀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여기-저기 폐허는 일반 조건이다. 공기 같은 조건이기에 툭 튀어나올 수 없고 느껴질 수 없다.  측정기 없이 공기를 잡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런 조건 때문에 무기력하다, 어 슬퍼 그런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조건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남겨진 폐허에서는 폐허 자체를 짚기 보다 그냥 풍경에 반응하는 대로 무언가를 하면 된다. 그럼 남겨진 이상한 것이 된다. 그건 개꿀이다. 
 
전시의 기민함,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이건 서울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폐허라는 생각이 맴돈다.
 
재밌게 봤다.


결국 이번 전시에서 드러나는 것은 멀리 떨어진 풍경으로서의 폐허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세 작가의 태도와 작업 방식이다. 이들은 어떠한 비관이나 자조도 없이, 의연한 태도로 폐허가 출몰하는 시간을 작업의 조건으로 끌어안는다.

 
음.. 폐허. 정서적인 폐허(내면의 장소)와 물리적인 폐허(실제 건축)로 좀 나눠보자. 내가 여기서 이상하고 낯설게 느낀 것은 어떤 정서적인 폐허를 공감하면서도 앞으로 맞부닥쳐야할 물리적인 폐허는 피로하다. 폐허는 힘들게 뚫어야하는 콘크리트벽이다. 폐허는 힘들게 치워야 하는 콘크리트 파편이다. 인테리어를 위해 큰소리로 벽을 부수고 4층 아래로 내려야 하는 잔해이다. 
 
지치다 보니 이 폐허를 조건으로 상정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나는 지친 상태를 극복해 없애야 할 상태로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그렇다. 폐허는 물리적 대결의 대상이다. 
 
그래서 납작하고 가벼운, 그리고 생각의 품이 덜 드는 회화를 그리는 것 같다. 도피다. 통제 가능한 물리적인 형태. 동시에 그리는 노동을 통해 조금은 맞선다는 느낌. 크기에 비해 가벼운 무게로 자주 맞닥리게 되는 폐허를 덮거나 맞서는 회화.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체력이 생겼는지 내가 느낀 폐허의 조건에 서 있어 보게 한다. 전시가 주는 영향도 있는 듯. 전시가 부러움과 질투를 만들면서 내게 힘을 주는군!(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