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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뭉치

대설 경보

by 천정누수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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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일이야. 어제 작업실에서 집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비였던 것이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 비가 올 줄 알았는데 정말로 눈이 내렸다. 기상청도 큰 눈이 내린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었다. 온 세상이 회색빛이다. 믿기지 않는군.
 
어제까지 친구 L은 제설할 생각에 걱정이 많았다. 그때 난"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했었는데, 이 말이 틀려서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제설을 위해 다음날 8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했을 땐 안타까웠다. L은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로도 그의 부대가 있던 강원도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강원도에 비가 오면 그 부대가 일을 안 할 것 같아서 배 아파하고 눈이 오면 기뻐했다. (눈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기억 속 L, 이제 제설하러 나갈 L 두 순간이 겹치며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즐거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말 개운했다. 그리고 침대에 오래 있었다. 대부분 오래 있고 이런 행동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날은 괜찮았다. '눈이 내려서 그런가?' 라고 생각했다. 눈이 내릴 때면 밝은 회색빛으로 어두워지는데 이런 풍경이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고 느끼게 한다. 종종 이런 감상에 빠져있을 때 "그런 생각할 시간에 뭐라도 하나 더 해야지 게으른 사람아"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오늘은 안 그랬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밥이 있을 거로 생각하고 더 늦게 일어났는데, 밥을 만들어야 했다. 안 잘했다고 생각했다.
 
눈이 오는 건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좋은 것 45% 싫은 것 55% 이런 비율이다. 싫은 이유는 친구 L처럼 제설을 떠올리기도 하고 저벅저벅 녹아버린 눈이 싫다. 좋은 이유는 풍경이 예뻐진다. 아 풍경 하니까 생각난 것. 어렸을 때 눈이 내리면 집 앞에 있던 주말농장에 눈이 내리면 놀러 가곤 했다. 거기서 눈을 파 그 속에 있던 초록색 풀을 발견했던 기억이 있다. 청경채 같은 둥근 잎 풀이되었던 것 같은데 이름은 알 수 없다. 약간 순록이 먹이를 찾듯 무언가를 찾는 행동 그 자체를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게, 침팬지가 개미굴에 나무줄기를 넣어 개미를 먹었던 것도 신기해서 따라 해봤었는데 왜 자꾸 동물이 먹는 걸 따라 하지?

오늘 저녁까지 폭설 경보 문자가 계속 왔다. 이번 폭설에서 신기한 건 단풍이 채 지지 않은 채로 눈이 잔뜩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잎이 많이 남은 나무 위로 눈이 잔뜩 쌓였다. 난 이 풍경이 경보 문자보다 긴장감 있게 다가왔다. 노랗고 붉은 잎 위로 내린 눈은 더 높게 쌓였다. 그 위로 눈을 파면 개미 키우는 어항처럼 옆면이 보이겠지? 위태롭게 쌓인 눈은 작업실 가는 내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약간 "로또 맞으면 뭐 사야 할까?" 같은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떨어져서 웃겼다. 정신 차리고 작업실이나 가라는 것 같았다.

눈은 오후 늦게 그쳤다. 눈이 그치고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그리고 햇빛이 내리비쳤다. 잎에 쌓인 눈에 햇빛이 비치는 게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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