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는 없어도 추적의 과정 속에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거나 갖추어 가는 촌재들이 있다. 이들은 검색된이들의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경유하여 우리의 일상 속에 편재하는데, 선명한 밝기와 채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온도, 질감, 매스는 액정의 얇은 온기와매끄러운 표면 속에 균일하게 압축된다.
(...)
전시에 참여한세 명의 작가들은 웹 상에 어진 이미지들음 현실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물리적변화를 보여주나, 공통적으로 인식에 있어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상을 구현한다. 불완전한 이미지가독자적으로 설립된 오브제(이동근), 물리적으로 접활 수 없는 존재를 현실화한 얇은 입체(임성빈), 촉은 정체를확답할 수 없을 만큼 둔갑된 모습 등(임다울), <접촉 환원> 에서 공개되는 작가들의 미디어들은 만남이 불가능한 존재를 매개하기 위해 이미지가 실체로 변모된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오류에 봉착한 작가들의 미디어들은 존재를 향한(존재하기 위한) 그들의 추적이 끝내 마칠 수 없을 여정임으로 밝혀진다.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공간 속 겉도는 환영은 관찰자들의 지각을 교란시키며 언어상의 정립보다 존재률 향한 사유의 표류를 유발하기에 이른다.
- 글 (양기찬)
두번째로 양기찬씨의 기획전시를 보고 왔다. 현재 디지털 미디어에 반응한 작가들의 작업을 주로 가져온 것 같다. 유동적이고 방대한 데이터와 접촉하여 만들어낸 촉감.
<임성빈>
말초적 자극을 유도하는 릴스, 상업적 목적으로 연출된 대량의 상품 이미지, 그리고 편집용으로 무분별하게 난무하는 유료 이미지들 등, 유통되는 웹 이미지들이 야기하는 정동과 인식이 작가에겐 민감한 문제로 다가왔다. 단발적으로는 유저들에 의해 가볍게 소비되는 디지털 존재들이지만, 유통의 과정과 노출의 빈번도에 따라 의미가 확고해지는 이들은 작가에게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행위를 유도하는 실체 없는 실체로 비추어졌다. 미디어를 사이에 두고 존재와 존재가 접촉하며 동시에 분리되는 상황, 곧 찰나에 의식 속으로 내재되다가
외재 되는 상황을 마치 미완결의 렌더링처럼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디지털 형상을 둘러싼 작가의 사유는 현실의 공간에 서있는 이미지의 형태로 표출된다. 근래에 그는 일상에서 수집한 디지털 이미지를 시트지로 출력하여, 평평한 철판 구조물 위에 덧입히는 형식을 선보였다. 작가는 해당 창작물을 어디까지나 조각이 아닌 입체에 불과하다고 설명을 하는데, 해당 방식은 3D프로그램에서 모델링 위로 이미지를 랩핑하는 과정을 모방한 형식이다. 3D툴과 차이가 있다면, 그는 가상 속이 아닌 가상을 현실 위로 랩핑 한다는 지점이다. 이처럼 물질이면서도 비물질이기도 한 현상을 구현하며, 작가는 감각과 관념의 간극을 가시화한다.
뭔가 웃기다. Pink fat lady chair라는 제목도 범상치 않다. 왜 제목을 이렇게 적었나요? 라고 묻고 싶다. 제목의 의도가 궁금하기보다 이사람의 캐릭터가 궁금하다. 이 제목을 설명하면서 머쓱해할까? 아니면 신나서 이야기 할까? 개인적으론 머쓱해하면 좋겠다.
Fan 작업의 설치 방식이 마음에 든다. 사진엔 안나오지만, 정말 환풍기가 있을 법한 높이에 있었는데 그것과 마주하는 거울을 둬서 신기한 조형이 되었다. 거울에 비치는 이미지는 움직일 때마다 바뀌는 유동적인 이미지가 되었는데 평면안에 갖혀있다. 억지로 엮어보면 핸드폰 화면에서 볼 수 있는 3차원 환영 같기도? 아 몰라
비두만 飛頭蛮 이 뭔가 했는데 중국 요괴였다.
머리만 떠다니는 요괴라고 한다. 몸에서 분리해서 날라다닐수 있다는 그런 설정인 듯. 저 작은 작업의 재료가 화려했는데, 라피스 라줄리, 사파이어, 스피넬, 아이올라이트등 석재 가 사용 됐다. 작은 것에 이렇게 긴 재료가 적혀 있어 흥미롭게 봤다.
<임다울> @rheem.daul
작가는 자신의 작업 안에 도깨비와 같은 면모를 확인한다고 했었다. 오늘날에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뿔 달린 도깨비의 도상과 반대로, 과거 선조들의 문헌들 속에 묘사된 도깨비는 각기 다른 지역과 시기에 따라 외형이 달리 표현되었다고 한다. 그 모습은 그들에게 선명히 감각된 현상으로 다가왔으나, 그 실체는 본 적이 없기에 여러 형상으로 둔갑한 듯 서술이 되어있다. 임다울 작가는 이러한 도깨비의 수수께끼 몸처럼 고체와 액체의 상태를 넘나드는 액정의 물리적 현상과 그것이 발현하는 타자/객체의 상호 연동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관심사는 그가 매체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캔버스이자 동시에 조각이기도 한 프레임 위로 반투명 실크 이미지를 입혀준 <최재연>(2023)이 적절한 예시일 것이다. 해당 미디어는 특정 주기에 따라 이미지를 탈복하고 다른 이미지로 덧입히길 반복하며, 동시에 관객이 마주하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 다른 이미지의 환영과 조각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로 인해 온전한 모습을 단번에 파악할 수가 없는 '최재연' 의 정체는 눈앞에 현전하고 있음에도 없는 듯한 상황을 조성한다. 이와 같이 다층적인 환영과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상은 대상을 인식 안에 포섭하려는 주체의 권위적인 시도를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새가 그려진 도상이 있는 작업(최재연 Choi JeaYeon, 2023)과 새가 충돌하지 말라고 붙이는 스티커(메아리 Echo)가 같이 이어지는게 흥미롭다. 전시장에선 생각하지 못했고 글쓰는 지금 발견.
<이동근 > @donggeunie
조각이라고 하기엔 물성이 얇으며, 회화라고 불리기엔 환영에서 도출된 그의 이미지는 특정한 매체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보의 단편적인 단서로부터 현상을 완전히 파악하고자 추가 정보를 수집하듯, 작가는 결핍 상태의 이미지가 중력 속에서도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이미지의 물질을 증식시킨다. 그 과정이 선형적인 논리가 아닌, 감각의 개연성에 따라 점층적으로 입체 형상을 갖추는 방식으로, 이는 서로 다른 불완전한 이미지들의 접합과 융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해당 과정에서 작가는 물리적으로 안정된 지지대를 안으로부터 뒷받침하는 대신, 얇은 레이어 막들을 겹겹이 쌓으며 외면의 껍질을 이루는 형식을 유지해 왔다. 이와 같은 양상이 형성된 배경에는 데이터 이미지가 독립된 존재로 용납될 수 있을 조형에 대한 작가의 오랜 자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를 가능케하고자 망막에 맺힌 디지털 이미지의 잔상(혹은 파편)을 다시 그려내거나 출처 모를 심상을 이미지화 한다. 단연 온전할 수 없을 이미지 조각이기에 작가는 화면 위로 외적인 요소들을 덧입힘으로써 현실에 존립할 몸을 갖추어 주고자 한다. 그러나 언제 멈출지 모를 이미지의 증폭은 어느 순간 중력의 제약을 맞닥뜨리며, 실존하기 위한 환영의 자유로운 누빔도 임시로 중단하기에 이른다.
이동근 작가의 화려한 물질 쇼! 작가 설명에 "결핍상태의 이미지가 중력속에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증식시킨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적절한 설명이라 생각 했다. 증식시키기 스타크레프트2 데하카 생각난다. 생명의 생체 에너지인 정수를 무한히 수집하려고 케리건의 저그 군단에 들어간 데하카 처럼 저 작업도 물질을 계속 수집하고 스스로 증식할 것 만 같다.
데하카 목소리 듣고 싶다 귀여운데
언젠가 수업에서 피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대화는 대충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세대로 오면서 피부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레진과 실리콘같은 물성을 사용해 피부와 유사한 질감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번 작업은 마찬가지의 감상을 느꼈다.
미디어 속 이미지는 영원히 접촉할 수 없으니 계속 만들어내기. 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얇거나, 원래 있던 물건에 둔갑하거나, 계속 뭉쳐 중력을 이겨내며 생기는 여러 몸부림이 인상적인 전시.
전시보고 근처 설렁탕집에서 밥먹었는데 특이 20000원이었다. 덕분에 한그릇이 12000원이 괜찮은 가격처럼 느껴졌다. 너무 비싸!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