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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더미

천사가 된 벌

by 천정누수 202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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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색 아크릴 곰팡이에 뒤덮인 벌,캔버스에 아크릴,60.6x72.7cm,2023

 
친구가 창가에 정말 귀여운 죽은 벌이 있다고해서 알게된 벌. 벌은 죽은지 오래 되어 보였다. 색은 바래 회색에 가까운 노란빛을 띄었고, 주변에 쌓인 포슬한 곰팡이는 그런 빛바램을 더욱 강조했다. 빛바랜 노란색 위로 뒤덮힌 곰팡이, 그리고 그 위로 쌓인 투명하고 흰 회색먼지는 벌의 죽음을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죽은 시체를 보고 신기하다고 알려주는 친구나, 그걸 보고 신나서 사진을 달라하고 그림으로 그린 나 일련의 과정이 따뜻하면서 괴상하다. 
 
여기서 괴상한건 일련의 감정의 흐름이다. 먼저 나를 생각해 벌을 보여주고 사진을 나눠준 친구의 다정함, 포슬포슬한 곰팡이로 뒤덮힌  벌의 형태에서 첫번째로 귀여움을 느낀다. 귀여움을 느낀 동시에 사체라는 씁슬한 감정도 인지하지만 주목하진 않는다. 벌의 사체에 느낀 두 감정은 이후 이 상황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행복하게 본 것이 사체라는 씁슬함이 점차 올라온다.  주목하지 않았던 씁슬함이 올라올 때 다정함과 힘을 맞추며 긴장감이 생긴다. 이런 긴장감은 그때 장면을 외면하지 못하게 하고  이 힘은 벌을 화면으로 신나게 옮기게끔 한다. 여기서 왜 신나지지? 긴장감이 너무 마음에들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괴상함은 두감정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감정일 것이다. 친구의 따뜻함과 죽은 벌에 대한 씁슬함, 이후 둘 사이를 오가며 사체를 붓과 물감으로 즐기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시체애호가가 된 기분. 

 
방안을 끝없이 맴돌다 죽은 벌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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