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서울은 스터디를 같이 하는 웅태씨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오래된 26년의 세월 동안 방치된 아파트를 전시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방안 곳곳에는 26년 전 볼법한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이해한 황웅태 작가는 회화가 어떻게 보존되고 제작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내가 흥미롭게 봤던 것은 과거의 거장의 "앞으로 훼손 상태"를 상상해 보는 작업과 남의 그림의 표면을 본떠 "작가의 그림을 붓질의 물성까지 복제해 내는 미래" 상상해 보는 작업이었다. 특히 그림의 표면을 본뜨는 작업엔 내 그림도 참여했다!
작업실에 놀러가서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다. 작년 대학원 4학기 수업의 일환으로 협업 작업을 해오라 해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웅태씨가 가지고 있던 많은 물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매우 매우 행복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위 그림은 이 그림을 표면만 복제한 그림. 실리콘으로 몰드를 만들고 흰색 아크릴물감으로 캐스팅해내 완성한다. 이 캐스팅된 그림은 색은 배제된 채 화면의 물성, 그러니까 붓질만 복제해 낸다. 그런데 흰색으로만 캐스팅하니 붓질의 요철이 너무 안 보여서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한다.
셔터 스피드를 조정해야하는 이 검은 깜빡임이 사라질 텐데.. 흰 그림의 매력을 잘 못 보여줘서 아쉽
원인과 해결방법은 위 링크로 들어가 보면 될 듯~
변수빈 작가의 작업을 본뜸, 이 작가의 가장 특징적인 붓질을 추출한 상태 같아 보인다.
전시장 벽면을 캐스팅한 것 같은 작업, 흥미로웠다
유토에 아크릴이 퍽하고 터진 모습이 재밌었다. 지금은 작업을 멈춘 작가의 작업을 황웅태 작가가 다시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시 서문에서 "회화-강령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의미와 매우 맞아 보이는 작업. 물론 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강령술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닌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전시장 불은 관람자가 껐다 켰다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어떤 조명으로 볼지 선택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조명을 바꿀 수 있는 점이 전시장과 작품을 친근하게 마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사진은 카메라 노출을 너무 올려서 환하게 나와버렸다.
황웅태는 자신이, 혹은 타인이 제작한 그림을 본뜬다. 주로 액상 실리콘 등을 활용해 튀어나오고 들어간 붓질의 양감을 복제하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양감 샘플은'을 3D 스캐너로 스캔하여 디지털 정보로 전환한다. 이후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해당 샘플을 일부 편집한 뒤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 말하자면 "회화-강령술"은 그림을 그리는 대신 그것을 복제하고 나아가 재생산하기 위한 방법이다. 작가가 "비회화적인 방식으로 회화를 최적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일련의 절차는 그림과 그림 그리기가 갖는 절묘한 필치와 생생한 생명력을 끝없이 복제 가능한 가치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강령술', 즉 생명이 다한 것을 생명이 다한 채로 소생시키는 주술행위에 비견될만하다.
-SID 전시서문 중, 황재민
"회화-강령술"이라는 방법론은 이처럼 분명하게 다가올 근미래의 기술 특이점을 예비하기 위한 수단이다. '대가'가 남긴 유일무이한 작품을 생생하고 무결하게, 물질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동의 차원에서마저 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종이 그간 예술이라고 개념화해 온 역사의 한 형태가 비로소 종말을 맞는 것에 다름없을 테다.
-SID 전시서문 중, 황재민
아니 왜! 제목을 안 물 어 봤 을 까.. 이건 섭섭했다. 그런데 다른 이름을 붙이기는 나름 강령술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전시를 본 직후에는 강령술이 "죽은 자를 되살리고 술사가 그 몸을 취해 자신의 명령을 듣게 하는" 흑마법 종류로 알고 있어서 "오호! 제목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뀌는 것 또한 일리가 있군" 생각하며 잘못 적힌 제목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다. 백색의 양감 팔레트 또한 강령술에 의해 백골로 부활한 망자, 좀비 같은 모습이 잘못 붙여진 제목과 연결되며 흥미로운 상상을 하게 했다. 흑마법사 복장을 한 작가의 모습도 상상해 보고 그랬다. 하지만, 실제 강령술은 죽은자를 되살려 이야기를 듣는 접신과 더 비슷한 주술이라고 한다.(나무위키 피셜)
그리고 이런 상상은 양감팔레트에 대한 인상을 웅태 씨의 작업실에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며 해방감을 느꼈던 감상을 떠올려 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학교 과제를 위해 웅태씨 작업실에서 내 그림을 캐스팅한 복제품 위로 다시 물감을 칠했다. 양감 팔레트 위로 칠하거나, 팔레트로 캐스팅되어 그림의 양감만 남은 내 그림 위로 다시 그리기. 이미 캐스팅된 형태 위에 색을 입히니 고민이 덜하고 색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내가 그렸지만 그린게 아닌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그리고 이 거리감이 자유로움, 해방감을 느끼게 한 듯하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그려진 그림이 새로운 무언가가 되길 기대하는 듯 하다. 이런 기대는 스크레프트 시리즈에서 복제된 자아를 갖고 있지만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선언한 탈란다르라는 캐릭터의 스토리를 생각하게 한다.
탈란다르를 설명하기 앞서 기계로 옮겨지기 전 인격인 피닉스를 설명해 보자. 피닉스는 스타크래프트 속 프로토스라는 외계 종족이다. 이 종족은 '칼라'라는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으며 과학기술이 매우 뛰어난, 고결한, 그렇지만 칼라라는 하나의 정신과 믿음으로 묶여 광신도(게임 내에서 "칼라에 뜻을 받들라", "내 목숨을 아이어에" 같은 대사를 뱉는다.)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피닉스는 이 종족의 뛰어난 전사 중 하나다.
스타크래프트 안에서 프로토스의 기본 보병 유닛은 질럿, 광전사이고 이들은 두 개의 검을 들고 적과 싸운다. 그리고 이들이 백병전을 벌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면 네발 달린 움직이는 기계전차에 탑승시켜 용기병으로 다시 싸우게 한다. 게임 내에서 피닉스는 보통의 광전사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안티오크를 방어하는 스테이지에서 치명상을 입은 이후 피닉스는 용기병의 모습으로 게임 내 부활,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전사한다.
이후 피닉스의 이름은 게임 내 정화자 프로젝트에서 언급이 된다. 정화자 프로젝트는 과거 프로토스의 뛰어난 전사들의 자아를 복제해 기계장치 안에 넣어 그들의 전투 경험을 가진 기계를 생산해 내는 프로젝트였다. 스타크래프트 2 - 공허의 유산 에선 피닉스의 정신이 복제된 기계 프로토스를 '피닉스'처럼 대우해 주며 게임을 플레이하게 한다. 이렇게 함께하면서 플레이어는 다른 캐릭터 간의 대화를 통해 부정적인 의견 "기계 프로토스를 믿을 수 없다", "그를 피닉스처럼 대우해선 안된다" 같은 의견을 보게 된다. 게임은 이런 스토리를 담은 채 진행되다 어느 구간이 오면 이 기계 프로토스는 스스로가 피닉스의 정신이 담긴 기계임을 인식하게 되고 그는 스스로를 강인한 심장 이란 뜻을 가진 '탈란다르'로 스스로를 이름 붙인다.
나는 피닉스이지만, 피닉스가 아니네. 나는 독립체이며 그 사실에 긍지를 느끼네.
I am Fenix, but not. I am my own entity, and I take pride in this.
내가 웅태 씨랑 협업하면서 느낀 어떤 해방감은, 그림이 복제되어 몇 번씩 부활하면서 자신만의 이름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러 번 몸을 바꾸지만 같은 정신을 갖고 있는 그림. 디지털 이미지로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갖게 되는 것 때문에 더욱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적다 보니까 그냥 피닉스, 탈란다르 스토리가 좋아서 주구 장창 적은 것 같지만. 나는 웅태 씨의 복제품이 웅태씨의 손과 기술을 통해 새로운 이름을 갖길 희망한다. 내 그림이지만, 내 그림이 아닌. 그런 독립체인 웅태씨의 작업이 되길 바란다.
'전시 관람 > 2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호라이즌> 신재민_플레이스 막2 (24.06.08-06.29) (0) | 2024.09.04 |
---|---|
<Анх의 оршихуй들 안흐ны 어리시호이нууд들>오태정, 엥흐벌드 어르헝_새공간(24.4.17-5.5) (0) | 2024.07.27 |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싶다.> 리너스 반 데 벨데_아트선재센터 (24.03.08-05.12) (0) | 2024.06.01 |
<Painterly Shawdow> 권봉균, 김현진, 오병탁, 원민영, 윤현준, 신동민_갤러리 더 소소 (2024. 3. 8 - 4. 5) (0) | 2024.06.01 |
<PROSPECT24> 김선행, 박소현, 송하영, 이주연, 최혜연 (24.02.16-03.15) (0) | 2024.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