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the very middle
전시기간 │2024.10.02-10.19
작가 │박은진, 신동민, 송지유
기획,글 │ 이유진
전시장소 │상히읗 snagheet
이날 동선은 먼저 IMF SEOUL , 서울 가장 안쪽으로 들어간 뒤 인천으로 돌아오는 동선으로 이동했다. 녹사평역에서 내려 상히읗을 가는데 에너지원, 카페인이나 당이 너무 필요했다. 때마침 가는 길에 카페가 있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들어갔는데, 아니? 오렌지 주스 아메리카노? 당장 사 먹자! 했다. 꽤 맛있었다. 재밌는 경험 한 달 뒤 가니까 메뉴가 없어져서 아쉬웠다.
김나빈 작가의 <vacation vocation> 전시에서 시에 대한 동경을 품은 마음이 전시와 연결되었던 것처럼. 이번 전시는 소설의 한 단락이 전시를 열어주고 있었다. 이날 본 전시가 모두 소설, 시와 같이 문자로 만들어진 것에서 시작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이렇게 텅 빈 페이지에서 모든 것은 움직인다. 결국 모든 게 울퉁불퉁한 이 세상의 표면에서 움직이지만 세상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듯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 종이처럼 동일한 물질이 세상에 확장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장은 여러 형태와 밀도 그리고 다양한 농담의 색깔로 수축되고 응축되지만 그래도 편평한 표면 위에 덧칠해진 모습으로, 또 털이나 깃털투성이 덩어리, 혹은 거북이 껍질처럼 마디투성이 덩어리로도 형상화될 수 있다. "
-이탈로 칼비노,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현경 옮김, 민음사, 2014, pp.128-129.
종이가 살짝 눌려 잉크로 찍힌 문자의 얕은 깊이가 소설 속 여러 존재로 확장된 나아가듯,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작은 요철에 세상을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들 같았다. 이전 김나빈 작가에게선 여백이 만들어내는 여유가 몸에 닿았다면, 이번 전시의 작가 들에게선 얕게 침전된, 꿰뚫는, 부스러지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얇은 종이를 입으로 불었다.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아니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지 완성되는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 보니 이렇게 부는 게 작업에 손상을 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지나다니면서도 바람 때문에 충분히 흔들릴 텐데.. 일단 지나치면서 생기는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고 불고 싶어졌다.
얇은 종이 위에 야리야리한 연필선을 얹고 종이를 고정하는 핀을 퍽퍽퍽! 나는 이 감각의 흐름을 느끼는 게 좋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지.
이것! 찾기 쉽군. 포인트는 여러 개 꽂힌 화살만큼, 저 빈 구멍도 중요하다. 구멍이 만들어내는 역동성. 신동민 작가의 그림에선 여기서 저 구멍이 없는 버전 감각이긴 하다. 얇은 드로잉에선 저 구멍이 상상되지만, 싹 감춘. 있어야 할 상처가 없는 모양새.
반대로 송지유 작가의 작업에선 화살은 안 보이는데 구멍만 보인다.
화살을 상상하게 하는 작업. 화살이 없는 것과 구멍이 없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좀 생각해 보자. 화살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송지유 작가의 작업은 붙어있는 종이, 뚫린 구멍 사이의 관계에서 감상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확장된다. 시멘트의 질감, 작업이 있는 곳의 넓이 이런 것들이 침투해 작업을 완성시킨다.
반대로 구멍은 내부를 상상하게 한다. 신동민 작가는 없는 구멍을 상상하게 한다. 핀이 퍽 하고 꽂히고, 종이만큼의 존재감을 갖는다. 그런데 뚫린 흔적 없는 종이. 그래서 자꾸 종이를 되돌아보고 연약한 연필선을 보게 한다.
머리를 넣어보고 싶다.
박은진 작가는 아주 적은 양의 먼지, 기름, 수분, 모래, 부스럼이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쌓여 합쳐진 표면을 보여준다. 몇 년간 기름에 튀기는 요리를 하는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많이 본 질감이다. 가끔 튀김기나 다른 가구를 따라 검은 먼지가 쌓인 걸 볼 수 있는데, 그때 느껴지는 쾌감을 닮았다.
이 침전된 기름때가 쾌감쾌감! 인 이유는
1) 으슥한 곳에 있음
2) 기름때가 있을 걸 예상했지만 예상 밖의 딱 떨어지는 모양.(배치된 가구에 형태를 따라가는 딱 떨어짐)
3) 그리고 그 모양 안에 여러 가지 먼지, 기름들이 뒤섞여 차분히 하나가 된 모습
때문이다. 이런 감각을 박은진 작가의 작업에서도 볼 수 있다. 그걸 아름답게 긁어낸 선도 좋다~
저 동그란 구멍과 빠져나온 동그라미의 관계를 상상하는 것 도 좋았다.
어 왜 저 가운데 있는 박은진 작가 그림 안 찍었지? 저거 왼쪽에 그 배수구멍 입구가 만들어진 지 오래돼 흘러내린 물 떼가 낀 것 같은 표현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왼쪽 아래 역 ㄴ 자로 막아버리기. 하하! 쾌감 쾌감!
종이 머리에 화살을 꽂은 것 같다. 책 찢은 것도부터 약간은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정말 한가운데 찔렀잖아?
박은진, 신동민, 송지유의 세상은 마치 낱장의 종이로 이루어진 듯하다. 한쪽 면을 눌러 생기는 흔적이 반대편에서 고스란히 감지되는 세계. 이들은 일상의 작은 요철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발 디딘 표면에 기꺼이 납작 엎드린다. 한편, 미지의 대상으로부터 우연히 수신한 메시지는 대개 예사롭다. 가령 산책길에서 마주한 개미 떼, 허공에 어렴풋이 울려 퍼진 메아리, 신체가 들어 찬 방의 올록볼록한 벽지 무늬, 보편의 허상인 꿈 등이 그것이다. 주지할 점은 가벼운 스침과 긴장에 불과할 사건들이 이들에게만큼은 아름답거나 고통스러운 마찰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강박스러울 정도로 대상을 더듬고 곱씹으며 자신과의 관계를 설정하여 형상화한다. 전시는 세 작가가 바라보는 풍경이 각자의 언어로 전용된 결과물, 고민과 농담, 그리고 사유의 흔적들을 엿보고자 한다.
글: 이유진
전시장을 오면서 오렌지주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셨는데, 얼음이 남아 덜그럭 거렸다. 다 먹고 나니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얕은 무언가를 톱아보면서 돌아다니는데, 더욱 그랬다. 바닥에 잠시 내려두고 여러 번 돌아본 뒤. 서둘러 나왔다. 왜냐하면 잠시 나갔던 지킴이 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왠지 오래 보는 게 부끄러웠다.
전시를 돌아보고 나니 17:30분 즈음인가? 퇴근 시간을 아슬아슬 빗겨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신도림 1호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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